카테고리 없음

"내 모든 것과 함께 / There Goes My Everything" - 태미 와이네트 / Tammy Wynette

kwkimkw 2025. 2. 14. 05:35

"내 모든 것과 함께 / There Goes My Everything"

- 태미 와이네트 / Tammy Wynette

 

 

I hear footsteps slowly walking                     천천히 걷는 발소리가 들려요

As they gently walk across a lonely floor      외로운 바닥을 부드럽게 걸어갈 때

And a voice that's softly saying                     다정하게 말하는 목소리

"Darling this will be goodbye for evermore" “그대여, 영원히 굿바이가 될 거예요”

 

There goes my reason for living                     내가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There goes the one of my dreams                  내 꿈 중 하나가 가고 있는 거예요

There goes my only possession                     내 유일한 소유물이 가고 있어요

There goes my everything                              내 모든 것과 함께

 

As my memory turns back the pages             내 기억이 페이지를 되돌릴 때

I can see the happy years we had before      전에 보냈던 행복한 시절이 보여요

And the love                                                   우리의 사랑

that kept this cold heart beating                     차가운 심장을 뛰게 했던

Has been shattered                                        부서졌어요

by the closing of a door                                  문이 닫히면서

 

There goes my reason for living                    내가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There goes the one of my dreams                내 꿈 중 하나가 가고 있는 거예요

There goes my only possession                   내 유일한 소유물이 가고 있어요

There goes my everything                            내 모든 것과 함께

 

 

   '태미 와이네트 (Tammy Wynette, 1942-1998))'는 1942년 미국 미시시피 주 이타왐바 카운티( Itawamba County, Mississippi)에서 태어났습니다. 컨트리 음악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라는 애칭으로 그녀의 명성을 떨친 미국의 톱 여가수이며 그녀의 본명은 '버지니아 와이네트 푸(Virginia Wynette Pugh)'입니다. 

 

   그녀가 생후 9개월 되던 때인 1943년에 음악인이었던 부친 '윌리엄 홀리스 푸(William Hollice Pugh, 1916-1943)'가 갑자기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고 모친인 '마일드레드 푸(Mildred Pugh,1922-1991)'는 앨라배마 주 버밍엄(Birmingham, Alabama)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버지니아 와이네트 푸는 조부 '윌리엄 토마스 푸(William Thomas Pugh, 1884-1980)'와 조모 '마가렛 푸(Magaret Pugh, 1891-1983)'에게 맡겨졌고 목화 농장을 하고 있는 조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버지니아 와이네트 푸는 트레몬트 고등학교(Tremont High School)를 졸업하기 한 달 전인 1959년에 '유플 보드(Euole Btrd)'와 결혼하였고 미용사로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에 버밍엄의 WBRC-TV의 쇼프로인 '컨트리 보이 에디 쇼(Country Boy Eddie Show)'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66년 유플 보드와 이혼하였고 세 딸을 데리고 컨트리음악의 본고장인 테네시 주 내슈빌(Nashville, Tennessee)로 이주하였습니다.

 

   버지니아 와이네트 푸는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사와 손을 잡았고 프로듀서인 '빌리 쉐릴(Billy Sherrill, 1936-)'과 함께 음반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지금의 '태미 와이네트(Tammy Wynette)'로 이름을 바꿨고 그녀의 나이 25세 때인 1967년에 데뷔 싱글 '넘버 나인 아파트(Apartment No.9)'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음악이 빌보드 핫 컨트리 싱글(Billboard Hot Country Singles) 차트 44위에 오르는 등 크게 히트하면서 그녀의 명성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1967년 4월 앨범 'Your Good Girl's Gonna Go Bad'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녀 특유의 청아하면서 독특한 목소리로 불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녀는 싱글 '젊은 시절(Tender Years)'의 곡을 비롯하여 수록된 '그대의 착한 여자가 나쁜 길로 가려고 해요(Your Good Girl's Gonna Go Bad)', '날 건드리지 마세요(Don't Touch Me)', 지금 흐르고 있는 '내 모든 것과 함께(There Goes My Everything)', '내게 장미를 더 보내줘요(Send Me No Roses)', '나와 함께 이 세상을 걸어요(Walk Through This World With Me)' 등의 곡을 불렀고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면서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등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녀의 앨범 'Your Good Girl's Gonna Go Bad' 역시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오르는 등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1967년 8월에는 앨범 'My Elusive Dream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내가 착각한 꿈(My Elusive Dreams)', '바보 같은(Something Stupid)', '그 걸로 끝이에요(It's All Over)'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싱글 '내 사랑 그대가 그리워요(Honey, I Miss You)', '사랑이 해답이에요(Love's The Answer)', '난 그대와 함께 내 세상을 나눌 거예요(I'll Share My World With You)' 등의 곡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1968년 1월에는 앨범 'Take Me To Your World / I Don't Wanna Play House'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난 소꿉장난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I Don't Wanna Play House)', '전화(The Phone Call)', '날 그대의 세상으로 데려가 주세요(Take Me To Your World)'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68년 7월에는 앨범 'D-I-V-O-R-C-E'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내 마음 상냥하게(Gentle on My Mind)', '내 사랑 그대여(Honey)', '보니와 디데의 전설(Legend Of Bonnie And Dyde)', '어제(Yesterday)', '이혼(D-I-V-O-R-C-E)', '그대의 마음에 불이 났을 때(When There's A Fire In Your Heart)'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같은 해인 1968년 11월에는 그토록 지구촌을 뒤흔들었던 '그 사람의 곁에서 힘이 돼주세요(Stand By Your Man)'를 발표하였고 빅 히트시켰습니다. 당시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3주 이상 머무는 등 가히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크게 히트하였고그녀의 대표곡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명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후 이 곡은 1993년 미국의 여감독으로 유명한 '노라 에프론(Nora Ephron, 1941-)'이 감독을 맡았고 '맥 샤이먼(Marc Shaiman, 1959-)'이 음악을 맡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1993)'의 O.S.T. 테마곡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이 곡이 발표된지 25년이 지난 1993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곡은 단지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 선정되었을 뿐, 영화 속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았지만 이 노래는 다시 한번 유명한 명곡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곁에서 힘이 돼주세요(Stand By Your Man)'의 곡은  태미 와이네트와 '빌리 쉐릴(Billy Sherrill, 1936-)'이 공동으로 작사 작곡을 하였습니다. 이 음악으로 그녀는 여성 컨트리 아티스트로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장 이상이 팔린 앨범에 주어지는 상인 '골드 레코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태미 와이네트의 청아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부른 '그 사람의 곁에서 힘이 돼주세요(Stand By Your Man)'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이 세상 밤이 춥고 쓸쓸한 남자들의 심금에 끊임없는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컨트리 음악 사상 가장 많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이기도 한 명곡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의 미국은 여권신장 운동(The Women's Rights)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이 음악으로 많은 여권신장 단체들로부터 '여성의 마조히즘(Masochism)' 혹은 '반 페미니즘'의 노래라고 혹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용서하고 두 팔을 내밀어 그 사람 곁에 머물면서 힘이 돼주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는 여성은 남성의 잘못된 행동이나 부당한 대우를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여성해방 운동가들에게 납득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노래라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된 것입니다. 이들 여권을 주장하는 시각 쪽에서 바라본 이 노래는 너무도 어이없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이에 태미 와이네트는 '내 뜻은 결코 여자가 남자 보다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며 단지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의 잘못이나 실수를 용서해 주고 사랑으로 받아주자는 뜻입니다'라고 해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이 노래를 공동 작사 작곡한 빌리 쉐릴은 '이 노래를 작곡할 당시 여성해방 운동이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여성들을 위해 곡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미 확고부동한 정체성을 갖고 있어 여성해방 운동에 휩쓸리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성들을 위한 노래입니다'라고 피력하였습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1969년 4월에 앨범 'Inspiration'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예요(You'll Never Walk Alone)', '영감(Inspiration)'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69년에 컨트리 뮤직 스타로 명성을 떨친 '조지 존스(George Jones, 1931-2013)'와 결혼 하였고 듀엣곡 '더 세레모니(The Ceremony)', '골든 링(Golden Ring)', '내가 착각한 꿈(My Elusive Dreams)' 등 많은 듀엣곡을 그와 함께 발표하였습니다. 이들은 1975년에 이혼하였지만 그녀의 마지막 앨범인 ' one'을 1996년에 조지 존스와 함께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1970년에는 앨범 'The Ways To Love A Man'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남자를 사랑하는 방법(The Ways To Love A Man)', '나의 노래를 불렀어요(Singing My Song)', '그는 당신을 대신할 수 없을 거예요(He'll Never Take The Place Of You)'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명실공히 컨트리 음악계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로 불리워졌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최고의 여자 컨트리 음악 슈퍼 스타로 군림하게 되었고 그녀의 명성을 지구촌 곳곳에 널리 떨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1979년에는 그녀의 자서전 '스텐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 1979)'이 출간되었고 1981년에는 태미 와이네트의 자서전을 근거로 '제리 제임슨(Jerry Jameson, 1934-)'이 감독을 맡은 영화 '스텐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 1981)'이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1981년 발표한 싱글곡 '빗속에서 울고 있던(Crying In The Rain)'의 곡를 비롯하여 '내가 제대로 해낼 때까지(Till I Get It Right)', '가끔 우리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Sometimes When We Touch)', '그대와 난(You And Me)', '그대 곁에(Near You)', '은실과 황금 바늘(Silver Threads And Golden Needles)', '이 밤이 지날 때까지 날 도와주세요(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히트하였습니다.

 

   '이 밤이 지날 때까지 날 도와주세요(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는 미국의 작곡가이며 내쉬빌 컨트리와 웨스턴 사운드를 대중화시켰던 뮤지션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 1936-)'이 작곡한 명곡입니다. 그의 3대 컨트리 히트곡 중 하나인 '이 밤이 지날 때까지 날 도와주세요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는 1970년에 그가 직접 부르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곡은 1971년에 '삼미 스미스(Sammi Smith, 1943-)'에 의해 발표되었고 같은 해인 1971년에는 빌보드 팝 차트 8위와 컨트리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아울러 삼미 스미스는 '최우수 컨트리 여성 보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1972년에는 이 곡을 '그레이디스 나이트 &더 핍스(Gladys knight &The Pips)'가 리메이크하여 불렀습니다. 그레이디스 나이트 &더 핍스 그룹의 리더 보컬인 '그레이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1944-)'가 특유의 애틋한 목소리로 불렀고 다시 한번 많은 인기를 이끌어 내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 후 이 곡은 무려 250여 명이나 되는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바이벌 혹은 리메이크되어 불려진 명곡이 되었습니다.

 

   태미 와이네트의 사생활은 그리 평탄치 못하였습니다. 다섯 번에 걸친 결혼은 그녀의 마음 속에 많은 상처를 남겼던 것입니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태미 와이네트는 1998년 4월 그녀의 약물 중독 치료와 수술 그리고 우울증의 악화에 의해 56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많은 동료 가수들과 후배 가수들이 모여 그녀를 추모하는 앨범 'Tammy Wynette Remembered'를 발표하였고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태미 와이네트의 앨범은 1억 달러 이상 발매되었고 그녀의 노래 중 20곡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컨트리 뮤직 협회의 '올해의 여자가수상'을 3번이나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1998년에는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습니다.

 

   - 김기원의 음악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