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날 쉽게 잊을 수 있나요
/ Am I That Easy To Forget"
- 스키터 데이비스 / Skeeter Davis
You say you've found 그대는 찾았다고 말하더군요
somebody new 새로운 사람을
But that won't stop my love in you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을 멈출 수는 없어요
I just can't let you walk away 난 그대를 그냥 떠나보낼 수는 없어요
forget the love I have for you 그대와 함께 나누었던 순간들을 잊은 채
Guess I could find somebody too 나도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But I don't want no one but you 그대 외엔 그 누구도 좋아할 수가 없어요
How could you leave without regret 어쩌면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나요
Am I that easy to forget 그렇게 날 쉽게 잊을 수 있나요
Before you leave be sure you find 그대가 떠나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요
You want her love 그대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어요
much more than mine 나보다 더
Then I'll just say we've never met 우리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해줄 테니까요
If I'm that easy to forget 내가 그렇게 쉽게 잊혀진다면
Before you leave be sure you find 그대가 떠나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요
You want her love 그대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어요
much more than mine 나보다 더
Then I'll just say we've never met 우리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해줄 테니까요
If I'm that easy to forget 내가 그렇게 쉽게 잊혀진다면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 1931-2004)'는 미국 켄터키(Kentucky) 주 출신이며 미국의 여성 컨트리 팝 가수로 본명은 '메리 프란시스 페니크(Mary Frances Penick)'입니다. 그리고 '스키터(Skeeter)'는 그녀의 조부가 지어준 애칭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모기처럼 여기저기 윙윙거리며 돌아 다녔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1944년부터 지방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켄터키 주의 딕시 하이트고등학교(Dixie Heights High School) 동기인 '베티 잭 데이비스(Betty Jack Davis, 1932-1953)'와 1952년에 듀오 보컬인 '데이비스 시스터스(The Davis Sisters)'을 결성하였고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데이비스 시스터스는 포춘 레코드(Fortune Records)사와 손을 잡고 '질투 많은 사랑(Jealous Love)'의 곡을 발표하였으며 히트하였습니다. 1953년에는 RCA 빅터 레코드(RCA Victor Records)사와 손을 잡았고 '난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걸 잊었어요(I Forgot More Than You'll Ever Know)'의 곡을 발표하였으며 8주 동안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와 빌보드 팝 차트 톱 20 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는 등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러나 활동한 지 얼마 안 되어 1953년 8월에 베티 잭 데이비스가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스키터 데이비스는 실의에 빠진 채 두문불출하고 말았습니다.
일체의 음악활동을 접은 채 두문부출하고 있는 그녀에게 RCA 빅터 레코드사의 '스티브 솔즈(Steve Sholes / Stephen H. Sholes, 1911-1968)'는 솔로로 재기할 것을 수차에 걸쳐서 권유를 하였습니다. 이를 받아드린 그녀는 RCA 빅터 레코드사의 도움으로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활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는 1958년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이자 컨트리 뮤직의 선두주자인 '어네스트 터브(Ernest Tubb, 1914-1984)'와 유명 기타리스트인 '체트 애킨스(Chet Atkins, 1924-2001)'와 제휴하였고 재기의 발판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컨트리 싱어 송라이터인 '행크 록클린(Hank Locklin, 1918-2009)'의 히트곡 '게이샤 걸(Geisha Girl)'의 곡의 답가이자 그녀의 첫 솔로 히트 싱글 '게이샤 걸에게 잃어버렸어요(Lost To A Geisha Girl)'의 곡을 발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59년에 테네시 주 내슈빌(Nashville, Tennessee)의 라디오 방송국 WSM에서 매주 토요일 밤 진행되는 컨트리 음악 공개 라이브 방송 프로그램인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 고정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해인 1959년에는 '그를 자유롭게(Set Him Free)'의 곡을 발표하였고 빌보드 컨트리 차트 5위에 오르면서 크게 히트하였으며 그래미 어워드 최초 여성 컨트리 가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홈브릭커(Homebreaker)', 지금 흐르고 있는 '그렇게 날 쉽게 잊을 수 있나요(Am I That Easy To Forget)' 등의 곡도 발표하였고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스키터 데이비스는 1961년 1월에 당시 인기 히트곡과 자신이 부른 답가를 함께 모아 담은 앨범 'Here's The Answer'를 발표하였습니다. 수록된 미국의 컨트리 싱어 송라이터이자 세계적인 가수로 명성을 떨친 '짐 리브스(Jim Reeves / James Travis Reeves, 1923-1964)'의 히트곡 '이제 그만 가 달라고(He'll Have To Go)'의 곡과 답가인 '여기 계셔야 해요(He'll Have To Stay)',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인 '플로이드 크레이머(Floyd Cramer, 1933-1997)'의 히트곡 '마지막 데이트(Last Date)'의 곡과 답가인 '나의 마지막 데이트(My Last Date)', 미국의 컨트리 싱어 송라이터로 4옥타브를 넘나드는 맑고 높은 고음을 구사하는 가수로 유명한 '레이 피터슨(Ray Peterson, 1939-2005)'의 히트곡 '로라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Tell Laura I Love Her)'의 곡과 답가인 '토미에게 그리워한다고 말해주세요(Tell Tommy I Miss Him)', 미국의 컨트리 싱어 송라이터인 '행크 록클린(Hank Locklin, 1918-2009)'의 히트곡 '제발 도와주세요, 난 사랑에 빠졌어요(Please Help Me, I'm Falling)'의 곡과 답가인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나도 사랑에 빠졌거든요(I Can't Help You, I'm Falling Too)', 미국 음악계에 전설을 남긴 미국의 정상급 국민 가수로 명성을 떨친 '에디 아놀드(Eddy Arnold, 1918-2008)'의 히트곡 '알고 싶지 않아요(I Really Don't Want To Know)'의 곡과 답가인 '당신에게 알리고 싶어요(I Really Want You To Know)', 미국의 컨트리 싱어 송라이터이자 밴드 리더로 활동한 '돈 깁슨 / 도널드 유진 깁슨(Don Gibson / Donald Eugene Gibson, 1928-2003)'의 히트곡 '그냥 한 번(Just on e Time)'의 곡과 답가인 '나도 당신을 보고 싶어요(I Want To See You Too)'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특히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나도 사랑에 빠졌거든요(I Can't Help You, I'm Falling Too)', '나의 마지막 데이트(My Last Date)', '낙관적인(Optimistic)', '어디서 해야 하나요(Where I Ought To Be)' 등의 곡은 1961년에 여성 컨트리 톱 텐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62년에 발표한 '작은 뮤직 박스(The Little Music Box)', '소중한(Something Precious)' 등의 곡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1963년에는 '이 세상 끝나버렸는데(The End Of The World)'의 곡을 발표하였고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이 음악은 미국의 톱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 1919-1965)'에게 '투 영 / 너무 어리다고(Too Young)'의 곡을 작곡해준 유명한 작곡가로 그 당시 명성을 날렸던 미국의 작가이며 송라이터인 '실비아 디(Sylvia Dee, 1914-1967)'가 작곡한 음악입니다. 실비아 디는 어렸을 적에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픈 마음을 담아서 만든 음악으로 4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실비아 디는 베티 잭 데이비스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스키터 데이비스에게 재기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이 곡을 선사해주었다고 합니다. 스키터 데이비스는 세상을 떠난 베티 잭 데이비스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크게 히트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녀의 최대 히트곡이자 최대 대표곡으로 자리메김하였던 명곡입니다. 이후 이 곡은 '로보(Lobo' 1943-)', '레논 시스터스(Lennon Sisters)',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 1938-)', '보비 빈튼(Bobby Vinton, 1935-)', '브렌다 리(Brenda Lee, 1944-)' 등 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진 명곡이 되었습니다.
스키퍼 데이비스는 이어서 같은 해인 1963년에 '난 내 사랑을 아껴둘 거예요(I'm Saving My Love)', '난 그대에게 화를 낼 수가 없어요(I Can't Stay Mad At You)' 등의 곡도 발표하였고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64년에는 '이젠 그대 없이 갈 거예요(Gonna Get Along Without Ya Now)', '그는 내게도 같은 말을 했거든요(He Says The Same Things To Me)', '그대와 가까이할 수 있게 해주세요(Let Me Get Close To You)', 1965년에는 미국 컨트리 싱어 송라이터인 '바비 베어(Bobby Bare, 1935-)'와 함께 부른 듀엣곡 '친애하는 존 편지(A Dear John Letter)', '선그라스(Sun Glasses)', 1967년에는 '엎친 데 덮치는 거예요(Fuel To The Flame)', '뭘 해야 하나요(What Does It Take)', 1968년에는 '생존을 위한 본능(Instinct For Survival)', '지금 이 순간에도 바보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어요(There's A Fool Born Every Minute)', 1969년에는 '난 연인이 있어요(I'm A Lover)', 1970년에는 '함께해요(Let's Get Together)', '바비 베어(Bobby Bare, 1935-)'와 함께 부른 듀엣곡 '당신의 남편, 나의 아내(Your Husband, My Wife)', '여자로 산다는 게 힘든 일이에요(It's Hard To Be A Woman)', '우린 예수님의 더 많은 걸 필요로 해요(We Need A Lot More Of Jesus)', 1971년에는 '켄터키 버스 요금(Bus Fare To Kentucky)', 1972년에는 '슬픈 상황(Sad Situation)', '기병 / 병사(One Tin Soldier)', 1973년에는 '난 온통 믿을 수가 없어요(I Can't Believe That It's All Over)',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Don't Forget To Remember Me)', 1974년에는 '한 번 더(One More Time)', 1976년에는 '난 우릴 사랑해요(I Love Us)' 등의 곡을 발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녀는 1959년 미국의 대표적인 컨트리 음악 쇼 프로그램인 테네시 주 내슈빌(Nashville, Tennessee) 라디오 방송국의 공개 라이브 방송 프로그램인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의 정식 멤버로 발탁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9년에 발표한 '그를 자유롭게(Set Him Free)'의 곡을 포함하여 다섯 곡이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그녀는 다섯 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던 것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는 그 후 컨트리 음악의 원천지인 미국 테네시 주의 내슈빌(Nashville, Tennessee)에 머물면서 컨트리 뮤직은 물론 웨스턴 사운드 공연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찾아가 무대에 오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컨트리 가수로 컨트리 뮤직계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렸던 '태미 와이네트(Tammy Wynette, 1942-1998)'와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로 컨트리 뮤직의 여왕으로 불렸던 '돌리 파튼(Dolly Parton, 1946-)'등의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던 미국의 전설적인 여성 컨트리 팝 가수이며 싱어 송라이터로 불멸인 것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는 유방암(Breast Cancer)의 악화로 2004년 9월 19일 그녀의 나이 72세를 일기로 불후의 명곡을 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 김기원의 음악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