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 사라 / Que Sara"
- 호세 펠리치아노 / Jose Feliciano
Paese mio che stai sulla collina 언덕 위에 서 있는 나의 고향
Disteso come un vecchio addormentato 난 이제 너를 떠나서 멀리 가겠어요
La noia, l'abbandono il niente 날마다 지루해지는 나의 마음
Son la tua malattia, 아무런 미련 없이 모두 떨쳐버리고
Paese mio ti lascio io vado via 난 이제 내 고향을 떠나가겠어요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요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무엇이 길 떠나는 내게로 올까요
So far tutto o forse niente da domani si vedra' 난 아마 내일 내게 변화가 일어날지 전혀 몰라요
Che sara', sara' quel che sara' 케 사라, 사라 켈 케 사라
Gli amici miei son quasi tutti via 먼저 떠나갔던 나의 고향 친구들
E gli altri partiranno dopo me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Peccato perche' stavo bene in loro compagnia 내 마음 담아서 전해야지
Ma tutto passa, tutto se ne va 내 뒤에 떠나올 고향 친구를 위해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요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무엇이 길 떠나는 내게로 올까요
Con me porto la chitarra 기타만은 가지고 가서 쳐야지
E se la notte piangero' 외롭고 슬픈 밤이 오면
Una nenia di paese suonero' 내 고향 하늘 바라보면서 노래 부르리라
Amore mio ti bacio sulla bocca, 나의 사랑하는 그대에게 키스하던
Che fu la fonte del mio primo amore 그대가 내 첫사랑이었어요
Ti do l'appuntamento come e quando non lo so 난 그대에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어요
Ma so soltanto che ritornero 하지만 언젠가 꼭 돌아올 거예요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요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무엇이 길 떠나는 내게로 올까요
Con me porto la chitarra 기타만은 가지고 가서 쳐야지
E se la notte piangero' 외롭고 슬픈 밤이 오면
Une nenia di paese suonero' 내 고향 하늘 바라보면서 노래 부르리라
Che sara' che sara' che sara'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 무엇이 올까요
Che sara' della mia vita chi lo sa 무엇이 길 떠나는 내게로 올까요
So far tutto o forse niente da domani si vedra' 난 아마 내일 내게 변화가 일어날지 전혀 몰라요
Che sara', sara' quel che sara' que sara' quel 케 사라, 사라 켈 케 사라 케 사라 켈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 1945-)'는 1945년에 푸에르토 리코(Fuerto Rico)의 라레스(Lares)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은 스페인계 미국인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5세 때에 푸에르토 리코를 떠나 미국 뉴욕의 스페인 빈민가로 이주한 그는 아코디온과 피아노, 기타를 독학으로 연마하였고 그의 나이 9세 때인 어린 나이에 공연 무대에 올라 설 정도로 어려서부터 음악성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나이 17세 때인 1962년부터 크럽 등에서 음악활동을 하였고 1963년에는 미국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 New York)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밴쿠버(Vancouver, BC) 등지에서 음악활동을 펼치는 등 미국과 캐나다 포크계에 그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62년에 알씨에이 빅터 레코드(RCA Victor)사와 손을 잡았고 1964년에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wport Jass Festival)에 출연을 하였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각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64년에 첫 싱글 '모든 사람들이 클릭을(Everybody Do The Click)'의 곡을 불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한데 이어 1965년에는 플라밍고 스타일의 데뷔 앨범 'The Voice And Guitar Of Jose Feliciano'를 발표하였습니다. 수록된 미국의 블루스 싱어 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인 '토미 터커(Tommy Tucker, 1933-1982)'의 R&B 히트곡 '하이 힐 운동화(Hi-Heel Sneakers)'의 곡을 편곡하여 불러 히트하였고 함께 수록된 컨트리 음악 고전곡 '마부 블루스 / 가죽장사 블루스(Mule Skinner Blues)', '두 개의 십자가(Dos Cruces)', '여자가 생겼어요(I Got A Woman)',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aval)', '당신을 만난 후로(Since I Met You Baby)', '두 번 생각 마요, 그대로 좋아요(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연인(Chinita)' 등의 곡도 크게 히트하면서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66년에 앨범 'The Fantastic Feliciano'의 발표에 이어 같은 해에 앨범 'A Bag Full Of Soul'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회공연을 통해서 많은 사랑과 함께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68년에 앨범 'Feliciano'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미국의 가수이자 시인, 송라이터, 영화감독으로 27세에 요절한 '짐 모리슨(Jim Morrison, 1943-1971)'이 주축이 된 밴드 그룹 '도어즈(The Doors)'의 히트곡 '나의 정열에 불을 붙여요(Light My Fire)'의 곡을 라틴 음악 형식으로 편곡하여 불렀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미국 빌보드 싱글 팝 차트 3위에 오르는 등 미국, 영국, 캐나다, 브라질 팝계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수록된 '캘리포니아를 꿈꿔요(California Dreamin')', '내 인생에서(In My Life)', '난 그녀를 사랑해요(And I Love Her)', '써니(Sunny)', '내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The Last Thing on My Mind)' 등의 곡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등 세계적인 가수로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다져갔던 것입니다.
그는 1968년 미국 월드시리즈 야구 개막전에서 미국 국가 '성조기 / 星條旗(The Star-Spangled Banner)'를 라틴 재즈 형식으로 불렀고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전통주의자와 국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세 펠리치아노는 미국의 반문화 체제에 앞장을 선 많은 젊은 층으로부터는 영웅으로 추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69년에 앨범 'Souled'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비지스(Bee Gees, 1958-2003, 2009-2012)' 그룹의 히트곡 '태양이 빛날 거예요(And The Sun Will Shine)'의 곡을 리메이크하여 불러 히트하였고 함께 수록된 '젊은 세대(Younger Generation)', '오늘밤 난 당신의 연인이 될 거예요(I'll Be Your Baby Tonight)', '히치콕 철도(Hitchcock Railway)', '슬픈 집시(The Sad Gypsy)', 이어서 같은 해에 앨범 'Alive Alive O'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곡인 '레인(Rain)', '말라게냐(Malaguena)', '코미디 비트(The Comedy Bit)', '관타나메라 / 관타나모의 여인(Guantanamera)', '당일 여행자(Day Tripper)', 그리고 역시 같은 해에 앨범 'Jose Feliciano - 10 To 23'을 발표하였으며 수록된 '5월의 첫날(First Of May)', '내 마음의 풍차(The Windmills Of Your Mind)', '내가 피닉스에 도착할 즈음(By The Time I Get To Phoenix)', '미스 오티스의 후회(Miss Otis Regrets)', '그녀는 여인이에요(She's A Woman)', '레이디 마돈나(Lady Madonna)',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Gotta Get A Message To You)', '헤이 주드(Hey Jude)'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는 그래미 최고 신인 아티스트(Best New Artist)상을 비롯하여 2개의 그래미상과 32개의 골드 레코드를 보유하는 등 어쿠스틱 기타와 아우러지는 슬픈 멜로디로 세계적인 가수이자 세계적인 수퍼스타로 발돋움하였던 것입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70년에 앨범 'Jose Feliciano - Firework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불꽃(Fireworks)', '운명(Destiny)', '노르웨이 목재(Norweigian Wood)', '페가오(Pegao)', '한때 사랑이 있었어요(Once There Was A Love)', '블랙버드 / 검은 새(Blackbird)', '수지-큐(Susie-Q)', '어제(Yesterday)', '그냥 내버려둬요(Let It Be)', 이어서 같은 해에 크리스마스 앨범 'Feliz Navidad'를 발표하였으며 수록된 '즐거운 크리스마스(Feliz Navidad)', '징글 벨(Jingle Bells)', '크리스마스 송(The Christmas Song)', '첫 번째 노엘(The First Noel)', '벚꽃 캐럴(The Cherry Tree Carol)', '북치는 소년(The Little Drummer Boy)',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우리 동양의 세 왕은(We Three Kings Of Orient Are)', '매리의 어린 소년 아이(Mary's Little Boy Child)', '그 맑고 환한 밤중에(It Came Upon A Midnight Clear)', '고요한 밤(Silent Night)', '들어라, 헤럴드 천사의 노래를(Hark, The Herald Angels Sing)', '라스 포사다(Las Posadas)', '산타 할아버지가 오고계시니까(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오 모두 오세요 충실한 자들이여(O Come All Ye Faithful)'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이탈리아 산 레모 가요제(San Remo Music Festival)에서 이탈리아어 지금 흐르고 있는 '케 사라(Que Sara)'의 곡을 불러 2위에 입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케 사라(Que Sara)'의 곡은 사랑하는 여인을 고향에 남겨두고 멀리 떠나면서 영혼의 노래로 설램과 불안한 마음을 담아 부른 라틴 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아르헨티나, 멕시코, 베네주엘라 등 여러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을 순회공연하였고 그의 스페인어 앨범과 영어 앨범들을 통해 그의 특유의 호소력 짙은 영혼의 목소리로 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지구촌 만인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독차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J. 리 톰슨(J. Lee Thompson, 1914-2002)'이 감독을 맡았고 '퀸시 존스(Quincy Jones, 1933-)'가 음악을 맡은 미국 서부 영화 '마켄나의 황금(Mackenna's Gold, 1969)'의 테마 주제곡 '올레 터키 버저드(Ole Turkey Buzzard)'의 곡을 불렀으며 미국 NBC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인 시트콤(Sitcom) '치코와 두목(Chico And The Man, 1974-1978)'의 테마곡 '치코와 두목(Chico And The Man)'의 곡 등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시트콤(Sitcom)은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의 줄임말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르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라디오에서 출발하였지만 현재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74년에 앨범 'Jose Feliciano - For My Love...Mother Music'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내 사랑(For My Love)', '음악 없는 세상(World Without Music)', '난 사랑 노래를 배우고 싶어요(I Want To Learn A Love Song)', '사랑의 예감(Blame It on The Sun)', '집시(The Gypsy)', '난 당신이 주는 걸 좋아해요(I Like What You Give)', '더러운 일(Dirty Work)', '슈 플라이(Shoo Fly)', '어머니 음악(Mother Music)'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는 '고든 파크스 주니어(Gordon Parks, Jr., 1934-1979)'가 감독을 맡은 스릴러 영화 '아론은 앤젤라를 사랑했다(Aaron Loves Angela, 1975)'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1981년에는 모타운 레코드(Motown Records)사와 손을 잡았고 1987년에 스페인어 라틴 앨범 'Jose Feliciano - Tu Immenso Amour'를 발표하였고 1989년에는 클래식 기타 음악 영어 앨범 'I'm Never Gonna Change' 등을 발표하였으며 크게 히트하면서 라틴 집단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존경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라틴 집단들은 호세 펠리치아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미국 동부 할램가에 그의 이름을 딴 아트스쿨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1990년에 앨범 'Steppin' Out'를 발표하였고 1996년에는 앨범 'Jose Feliciano - Americano', 1997년에는 앨범 'Jose Feliciano - On Second Thought' 등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시각 장애인인 호세 펠리치아노는 기타, 피아노를 비롯하여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그는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불렀으며 만인들의 심금을 끊임없이 울려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을 위한 많은 자선사업에도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그는 세계적인 미국 소올 음악의 개척자 '레이 찰스(Ray Charles, 1930-2004)'와 미국 최연소 빌보드 정상 등극 신기록 보유자이며 흑인 음악의 거장인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1950-)'와 더불어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을 이겨낸 세계 최고의 시각장애인 팝 아티스트 3인방으로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 김기원의 음악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