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캉틀루브의 가곡"오베르뉴의 노래"중에서"바일레로/목동의 노래"-소프라노: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
요셉 캉틀루브의 가곡 "오베르뉴의 노래
/ Chants D'Auvergne" 중에서
"바일레로 / 목동의 노래 / Bailero"
- 영국 실내 관현악단
/ The English Chamber Orchestra
- 지휘: 제프리 테이트 / Jeffrey Tate
- 노래: 키리 테 카나와 / Kiri Te Kanawa
Pastre de delai l'aio 목동이 냇물을 건너가네요
A gaire de boun tems 조금도 겁내는 기색도 없이
Dio lou bailero lero, 목동의 노래를 불러요
Enai pas gaire e dio, tu, 나 또한 태연할 수 있네요 그대 역시
Bailero lo 바일레로를 노래하고 있으니까
Pastre, lou prat fai flour 목동이여 목장에는 꽃이 만발해 있으니
Li cal gorda toun troupel 이리와서 바일레로를 불러요
Dio lou bailero lero 목동의 노래를 불러요
L'erb es pu fin ol prat d'oici 이쪽은 온통 초록 풀밭이네요 그대가 이리와서
Bailero lo 바일레로를 노래해요
Pastre, couci forai 목동이여 냇물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네요
En obal io lou bel riou bel riou! 나는 건너갈 수 없으니 어쩌지요
Dio lou bailero lero 목동의 노래를 불러요
Esperome, te, bao circa 그럼 내가 그대에게 건너갈게요
Bailero lo 그래요 바일레로를 노래해요
Pastre de delai l'aio 목동이 냇물을 건너가네요
A gaire de boun tems 조금도 겁내는 기색도 없이
Dio lou bailero lero 목동의 노래를 불러요
Enai pas gaire e dio, tu, 나 또한 태연할 수 있네요 그대 역시
Bailero lo 바일레로를 노래하고 있으니까
Pastre, lou prat fai flour 목동이여 목장에는 꽃이 만발해 있으니
Li cal gorda toun troupel 이리와서 바일레로를 불러요
Dio lou bailero lero 목동의 노래를 불러요
L'erb es pu fin ol prat d'oici 이쪽은 온통 초록 풀밭이네요 그대가 이리와서
Bailero lo 바일레로를 노래해요
Pastre, couci foray 목동이여 냇물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네요
En obal il lou bel riou bel riou! 나는 건너갈 수 없으니 어쩌지요
Dio lou bailero lero 목동의 노래를 불러요
Esperome, te, bao circa 그럼 내가 그대에게 건너갈게요
Bailero lo 그래요 바일레로를 노래해요
'요셉 캉틀루브(Joseph Canteloube, 1879-1957)'는 1879년 프랑스 오베르뉴(Auvergne, France)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작곡가입니다. 그의 본명은 '마리-요셉 캉틀루브 드 마레(Marie-Joshep Canteloube De Malaret)'입니다. 그는 오베르뉴 지방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민요를 정리하여 편곡한 민요집 '오베르뉴의 노래(Chants D'Auvergne / Songs Of The Auvergne)'의 발표로 더욱 유명해진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리고 향토색 짙은 오페라의 작곡가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진 프랑스가 자랑하는 음악학자입니다.
요셉 캉틀루브는 1901년 파리의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에 입학하였고 '빈센트 댕디(Vincent D'Indy, 1851-1931)'와 '사르르 보르도(Charles Bordes, 1863-1909)'에게 수학하였습니다. 빈센트 댕디는 프랑스 민요에 강한 열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선조도 오베르뉴 출신이었기에 제자인 요셉 캉틀루브에 대해서는 사제지간을 초월한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는 '데오다트 드 세베락(Deodat De Severac, 1872-1921)', '알베르트 러셀(Albert Roussel, 1869-1937)' 등과 함께 음악 공부를 수학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셉 캉틀루브는 빈센트 댕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빈센트 댕디의 음악적 사상이 그의 작품 세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셉 캉틀루브는 1907년 4악장의 피아노, 바이올린 조곡인 '산악에서(Dans La Montagne)'를 작곡하였고 1908년에 성악과 현악 4중주곡인 '감상적인 대화(Colloque Sentimental)'를 작곡하였습니다. 이어서 1910년에 관현악곡 '가을의 목가(Eglogue D'Automne)'와 1912년에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 1868-1918)'의 시성이 풍부한 경희극으로 중세의 전설을 소재로 한 교향시 '먼 나라의 공주(Vers La Princesse Lointaine)' 그리고 1922년에는 관현악 반주 가곡인 '봄날에(Au Printemps)'와 연작 가곡인 '대지(L'Arada / Earth)'를 발표하였습니다.
1924년에 그는 연주회에서 '오베르뉴의 노래(Chants D'Auvergne / Songs Of The Auvergne)'를 발표하였고 많은 사랑과 함께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계기도 되었습니다. 오베르뉴의 노래는 프랑스의 고원지대인 오베르뉴 지방의 정경을 그린 민요로 이 지방에서 구전으로 전래된 곡들을 요셉 캉틀루브가 채집 정리한 민요집입니다. 요셉 캉틀루브는 그 중 많은 곡들을 관현악 반주를 붙인 성악곡으로 개작하여 1925년에 출판하였으며 널리 사랑을 받았습니다. 양치는 목동들의 모습을 소박하고 아름답게 묘사하였고 목동과 양치기 소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전 27곡으로 된 순수 노래인 그랑드와 무곡을 동반한 부레(Bourress)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려한 선율미와 색채적인 관현악법 반주 등으로 오베르뉴 지방의 고원 정경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가곡집입니다. 중세시대 프랑스 중부지방에서 널리 사용된 방언인 랑그 도크(Langue D'oc)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어 많은 가수들이 정확한 발음을 위해 특별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남프랑스의 중앙부 산악지대로 프랑스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산맥의 줄기를 타고 형성되어 있는 오베르뉴 지방은 프랑스 최고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는 고원 산악지대입니다. 오베르뉴 지방의 리마뉴 고원 중심부인 크레르몽은 제1회 십자군 원정 결정회의를 연 역사적인 중세시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낙농업을 주로 하여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양질의 온천수가 나오는 천혜의 관광지로 개발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중세시대를 연상하게 해주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 지방 북쪽은 고대 로마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12세기에 세워진 노틀담 뒤폴 성당을 비롯하여 13세기에 세워진 두개의 검은 첨탑을 갖고 있는 거대한 고딕 양식의 라송 부시옹 대성당 등이 있습니다.
'오베르뉴의 노래' 가곡집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흐르고 있는 '바이레로 / 목동의 노래(Bailero / Le Bylere / The Shepherd's Song)'를 비롯하여 '송아지를 따라서(Obal, Din Lou Limousin)', '초원을 따라서(Passo Pel Prat)', '뻐꾹새(Lou Coucut)', '나는 애인이 없네(N'Ai Pas Ieu De Mio)', 샘물(L'Aio De Rotso)', '자장가(Brezairola)', '자장가(Pour L'Enfant)', '양치기 소녀(Pastourelle / Shepherd Lass)', '초원의 양치기 소녀(La Pastoura Als Camps / The Shepherdess In The Fields)' 등의 곡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25년 그의 3막극 오페라 '농장(Le Mas / The Farmstead)'이 상연되었고 그후 4막극 가극 '베르산제토릭스(Vercingetorix)'도 상연되었으며 요셉 캉틀루브의 향토색 짙은 대표적 오페라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오페라 '농장(Le Mas)'으로 휴겔상(Prix Heugel)과 10만 프랑을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후 '오베르뉴의 종교 노래(Chants Religieux D'Auvergne)', '가리아 인의 찬가(L'Hmne Des Gaules)' 등의 곡도 발표하였습니다.
1941년 프랑스에 진주한 독일 나치 정권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1949년에 그의 스승인 빈센트 댕디와 1950년에는 그의 친우인 디오다트 드 세베락의 평전을 각각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1944년에는 '프랑스 애창곡집(Anthologie Des Chants Popuaires)'을 편집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셉 캉틀루브는 1957년 그의 나이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 실내 관현악단(The English Chamber Orchestra)'은 영국 런던을 본거지로 하여 활동하고 있는 실내 관현악단입니다. 1948년 '로렌스 레너드(Lawrence Leonard, 1923-2001)'와 '아놀드 골즈브러(Arnold Goldsbrough, 1892-1964)'가 설립한 '골즈브러 오케스트라(Goldsbrough Orchestra)'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관현악단은 1960년부터 현재의 명칭인 '영국 실내 관현악단(The English Chamber Orchestra)'으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음악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영국 실내 관현악단은 '레이몬드 레파드(Raymond Leppard, 1927-)',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 1927-)',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등을 포함한 객원 지휘자들이 이끌어왔습니다.
영국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의 가극 '한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컬류 강(Curlew River)'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25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한 '윌프레드 오웬(Wilfred Owen, 1893-1918)'의 시 9편에 역시 벤자민 브리튼이 작곡을 한 '전쟁 진혼곡(The War Requiem)'의 연주는 영국 실내 관현악단의 손꼽히는 대표적인 연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벤자민 브리튼의 한여름밤의 꿈의 작곡은 셰익스피어의 5막 희극 '한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의 원작의 내용을 선율에 담아 매력적으로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Symphony No.25)과 교향곡 40번(Symphony No.40)의 연주도 뛰어난 연주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 실내 관현악단의 유명한 연주입니다.
1985년에 척추 장애자이면서 치밀한 구성력으로 지휘를 하고 있는 '제프리 테이트(Jeffrey Tate, 1943-)'가 수석 상임 지휘자로 지명을 받았으며 영국 실내 관현악단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라르프 고드니(Ralf Gothoni, 1946-)'가 수석 상임 지휘자로 이 관현악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영국 실내 관현악단은 그들만의 섬세하고 매력적인 연주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고 세계 주류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 명성과 아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프리 테이트(Jeffrey Tate, 1943-)'는 1943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척추 장애자이면서 영국 지휘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입니다. 그는 1961년 판햄 그래머 스쿨(Farnham Grammer School)을 졸업하고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 대학(Cambridge University)에 입학하여 의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런던의 성 토마스 병원(St. Thomas's Hospital, London)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제프리 테이트는 음악에 뜻을 두었습니다. 1970년에 런던 오페라 센터(London Opera Centre)에서 합창지휘와 리허설 피아노를 담당하면서 음악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 1912-1997)'의 감독 아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의 가수들의 연습 코치인 레페티퇴르(Repetiteur)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79년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국제적인 지휘자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1985년에는 영국 실내 관현악단(The English Chamber Orchestra)의 수석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2000년까지 활동하였습니다. 같은 해인 1985년에 로열 오페라 하우스(The Royal Opera House)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1991부터 1995년까지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tterdam Philharmonic Orchestra)에서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였습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Di San Carlo In Naples)의 음악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Hamburg Symphony Orchestra)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프리 테이트는 섬세한 지휘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 1944-)'는 뉴질랜드(New Zealand) 출신으로 풍요한 발성과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입니다. 그녀는 1944년 뉴질랜드 남섬 기스본(Gisborne)에서 마오리(Maori) 인과 유럽계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아일랜드 인 양모와 마오리 인 양부에게 입양되었기에 그녀의 친 부모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양모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키리 테 카나와를 위해 오클랜드로 이주를 했습니다. 1959년부터 그녀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성 마리아 대학(St Mary's College In Auckland)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시스터 메리 레오(Sister Mary Leo, 1895-1989)'에게서 오페라식 발성법을 배웠고 처음에는 메조 소프라노(Mezzo Soprano)로 시작하였으나 후에 소프라노로 전환하였습니다.
키리 테 카나와는 1963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모빌 송 퀘스트(Mobil Song Quest In New Zealand, 1963) 대회에서 우승을 하였고 이어서 1965년에 모빌 송 퀘스트 대회와 호주 멜버른 선 아리아 콘테스트(Australian Melbourne Sun-Aria Contest, 1965) 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거머쥐면서 그녀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Jr., 1825-1899)'의 오페라 '카사노바(Casanova)' 중에서 '수녀의 합창(Nuns' Chorus)'을 출시하였으며 처음으로 뉴질랜드에서 골드 음반(Gold Record)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1966년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장학금으로 런던 오페라 센터(London Opera Centre)에 입학하였으며 '베라 로자(Vera Rozsa, 1917-2010)', '제임스 로버트슨(James Robertson)'에게서 수학하였습니다. 그녀를 가르쳤던 제임스 로버트슨은 '키리 테 카나와가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음악적 기교는 가지고 있지 못했으나 단숨에 청중을 사로잡는 재능과 매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Idomeneo)'에 출연하여 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로열 오페라 코벤트 가든(The Royal Opera Covent Garden)에서 조연급으로 3년간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1971년 그녀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천상의 목소리', '오페라의 백작부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전 세계 성악계에 스타로 떠오르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입은 그녀는 뉴 멕시코 산타페 오페라(Santa Fe Opera),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an Francisco Opera),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In New York), 프랑스 파리 오페라(Paris Opera),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La Scala In Milan), 시카고 리릭 오페라(The Lyric Opera Chicago) 등의 무대에 오르며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그녀의 주요 출연작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의 피오르딜리지(Fiordiligi) 역, '마술피리(Die Zauberflote)'의 파미나(Pamina) 역,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Jr., 1825-1899)'의 오페라 '박쥐(Die Fledermous)'의 로잘린데(Rosalinde) 역,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비올레타(Violetta) 역,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Tosca)'의 토스카(Tosca) 역 등이 있으며 그녀가 여러번 출연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의 돈나 엘비라(Donna Elvira) 역은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의 백작부인 역,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echard Strauss, 1864-1949)'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의 마샬린(Marschallin) 역, '아라벨라(Arabella)의 아라벨라(Arabella) 역 등과 함께 그녀의 최고 출연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키리 테 카나와는 팝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즐기면서 불렀고 음반도 출시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이 지휘를 맡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에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1946-)'와 출연하였고 뮤지컬 '남태평양(South Pacific)',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등의 O.S.T. 곡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1981년 영국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장인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St. Paul Cathedral)에서 결혼 축가로 '헨델(Georg Fridrich Handel, 1685-1759)'의 '빛나는 천사여(Let The Bright Seraphim)'를 열창하였습니다. 600만 관중이 직접 지켜보고 있고 TV 생중계 전파를 타고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의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가 지구촌 만인들의 심금을 그토록 울려주었던 것입니다.
다음 해인 1982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의 훈장(The Order British Empire)인 'Dame'의 작위를 수여받으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1990년에는 호주 훈장(Honorary 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을 수여받았고 1995년에는 뉴질랜드 훈장(The Order Of New Zealand)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캠브리지(Cambridge), 더햄(Durham), 노팅엄(Nottingham), 옥스퍼드(Oxford) 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그녀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키리 테 카나와는 우리나라에 두차례나 방한하여 내한 공연을 펼쳤습니다. 1994년 세종문화회관 콘서트홀과 2007년 3월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성악가입니다. 2004년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Washington National Opera)과 로스앤젤레스 오페라(Los Angeles Opera)에서 바버(Samuel Barber, 1910-1981)의 오페라 '바네사(Vanessa)'의 바네사(Vanessa) 역을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나 여전히 여러 콘서트 홀에서 공연을 갖는 등 멈추지 않고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2004년 2월에 '키리 테 카나와 재단'을 설립하였고 뉴질랜드의 젊은 성악가와 음악가들의 후원은 물론 후계자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시계 제작회사인 로렉스(Rolex)와 에이 에스 비(ASB) 은행 등이 이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8년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시카고 심퍼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갖는 등 그녀는 명실공히 뉴질랜드의 국민 성악가로 영국의 보물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 김기원의 음악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