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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태양 / O Sole Mio" - 플레시도 도밍고 / Plecido Domingo

kwkimkw 2025. 2. 10. 05:44

"나의 태양 / O Sole Mio"

- 플레시도 도밍고 / Plecido Domingo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오 맑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n'aria serena doppo na tempesta!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하다

pe' Il'aria fresca pare gia na festa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 올 때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오 맑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Ma n'atu sole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친다

cchiu bello, oje ne                                   나만의 사랑스러운

O sole mio                                               나의 태양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O sole                                                      태양

O sole mio                                               나의 태양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Quanno fa notte e 'o sole se ne scenne 저녁이 오고 태양이 끝까지 가라앉을 때

me vene quase 'na malincunia               우울한 마음이 석양빛에 서리기 시작하면

sotte 'a fenesta toia restarria                  그대의 창문 아래에서 나는 머무른다. 

Quanno fa notte e 'o sole se ne scenne 저녁이 오고 태양이 끝까지 가라앉을 때

 

Ma n'atu sole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친다

cchiu bello, oje ne                                    나만의 사랑스러운

O sole mio                                                나의 태양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O sole                                                       태양

O sole mio                                                나의 태양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sta 'nfronte a te!                                       그대의 얼굴 위에서 더 밝게 빛난다

    

    

   '나의 태양(O Sole Mio)'은 나폴리(Naples) 출신이며 나폴리에서 활동한 작가, 시인인 '지오반니 카푸로(Giovanni Capurro, 1859-1920)'의 시에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 1865-1917)'가 작곡을 붙인 나폴리 민요이자 대중 가곡인 나폴레타나(Napoletana)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명곡입니다.

 

   19세기 말 나폴리에서 명성을 떨쳤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는 바이올리니스트인 그의 부친과 함께 흑해 연안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습니다. 1898년 4월 그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Odessa)에 머물던 중 창문에 쏟아지는 봄 햇살을 맞이하면서 악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연주 여행을 떠나올 때 지오반니 카푸로가 건네준,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태양에 비유한 짧은 시 '나의 태양'에 곡을 붙였다고 합니다. 연주 여행을 마치고 나폴리로 돌아온 그는 이 곡을 1898년에 열린 피에디그로타(Piedigrotta) 가요제에 출품하였으며 2위에 입상하였습니다. 이 곡의 저작권은 출판업자인 '비데리(Bideri)'가 사들였고 당시 황금의 목소리로 명성을 크게 떨쳤던 나폴리의 톱 테너 가수인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가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며 '나의 태양(O Sole Mio)'이 크게 히트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도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곡은 '마리오 난자(Mario Lanza, 1921-1959)',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 '플레시도 도밍고(Plecido Domingo, 1941-)',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1946-)', 앙드레아 보첼리(Andrea Bochelli, 1958-)' 등 세계적인 성악가를 비롯하여 각국의 많은 정상급 가수들에 의해 불려진 전 세계적인 불후의 명곡입니다.

 

   이탈리아는 민요가 풍부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남부지역 민요는 낙천적이고 개방적인 반면 북부지역 민요는 깊이가 있고 어두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18세기 경부터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벨칸토(Bel Canto) 창법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민요에서도 이 벨칸토 창법이 응용되었고 밝고 늠름하게 불렀다고 합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민요는 지중해를 끼고 맑은 태양과 아름다운 바닷가의 풍광을 지닌 나폴리를 중심으로 많은 민요가 전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권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 도시입니다. '나폴리를 보기 전에는 죽지마라!(Vedi Napoli E Poi Muori!)'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나폴리의 바닷바람에 푸른 파도 일렁이며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석양이 질 무렵 붉게 타들면서 가라앉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말 일 것입니다. 지정학상 아랍계 문화와 언어의 유입은 물론 주변 여러나라들의 영향을 받은 항구 도시였으며 그리스의 식민지배하에 있었던 나폴리는 특히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따라서 나폴리에서는 이탈리아 말과 나폴리 특유의 방언인 나폴리 말이 일상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폴리 방언인 나폴리 말로 'O Sole Mio(나의 태양)'의 'O'는 감동사가 아니고 남성 정관사입니다. 따라서 '오! 나의 태양'이 아니라 '나의 태양'이며 이탈리아 말로는 'Il Mio Sole(나의 태양)'라고 합니다.

 

   이렇듯 나폴리 말 가사에 곡을 붙여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래인 '나폴리 민요(Neapolitan Music)', '나폴레타나(Napoletana)', '칸초네(Canzone)' 등으로 불려진 곡들이 오는날까지 나폴리를 시발점으로 하여 이탈리아를 비롯 유럽 각국의 대중 애창 가곡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적인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나폴레타나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로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교회(Piedigrotta Church) 앞 광장에서는 매년 9월 이탈리아 민요제 '피에디그로타 가요제(La Festa Di Piedigrotta / Festival Of Piegrotta)'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1953년부터는 나폴리에서 열리고 있는 '칸초네 나폴레타나 페스티벌(Festival Della Canzone Napoletana / Festival Di Napoli)'로 계승 발전시켜 다시 나폴리 민요인 나폴레타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La Festa Di Piedigrotta / Festval Of Piedigrotta)'를 통해서 1853년 '테오도로 코트라우(Teodoro Cottrau, 1827-1879)' 작곡의 '산타 루치아(Santa Lucia)', 1868년에 '잘 있거라 나폴리(L'Addio A Napoli)' 등의 곡을 비롯하여 1880년 '루이지 덴자(Luigi Denza, 1846-1922)' 작곡의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 Funicula)', 1898년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 1865-1917)' 작곡의 '나의 태양(O Sole Mio)', 1899년에 '마리아 마리(Maria Mari)', 1902년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 1860-1926)'의 작사에 동생인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Ernesto De Curtis, 1875-1937)'가 작곡을 붙인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orrento / Torna A Surriento / Come Back To Sorrento)', 1919년 'E. A. 마리오(E. A. Mario, 1884-1961)' 작곡의 '먼 산타 루치아(Santa Lucia Luntana)' 등의 곡이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명곡입니다. 그리고 이 곡들은 나폴리의 어부들을 통해 널리 애창된 서정적인 민요가 되었으며 후에 '나폴레타나(Napoletana)', '칸초네(Canzone)'라고도 불려졌습니다.

 

   '플레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는 1941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스페인 민속 오페라 사르수엘라 극단(Zarzuela Company)에서 가수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8세 때인 1949년에 그의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하였고 유년을 멕시코에서 보냈습니다. 멕시코의 국립음악원(National Conservatory Of Music In Mexico City)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으며 성악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그는 처음에 사르수엘라 극단의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1959년에는 멕시코 국립오페라(Mexico National Opera)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961년에는 멕시코시티 가극장에서 바리톤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61년에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 椿姬)'에서 테너 알프레도(Alfredo) 역으로 출연하여 테너와 바리톤을 병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플레시도 도밍고는 1962년에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립오페라단(Israel National Opera In Tel Aviv)에 입단하여 1965년까지 활약하였습니다. 1965년 뉴욕시티 오페라(New York City Opera)에서 활동하였고 1968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The Metropolitan Opera In New York)에서 이탈리아 성악가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 1921-2003)'의 대역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대역으로 무대에 오른 플레시도 도밍고는 그의 뛰어난 가창력과 기량을  보여주었으며 급기야 세계적인 테너 가수로 명성을 날린 계기도 되었습니다. 이어서 '베르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베를리오스(Hector Berlioz, 1803-1869)'의 오페라를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전 세계 오페라 무대와 음반계에서 '음악계의 진정한 르네상스맨'이라 불리울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낸 성악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80년에는 지휘에 관심을 보였으며 오페라와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습니다. 1982년에는 미국의 최고의 컨트리, 포크 음악(Country, Folk Music) 가수인 '존 덴버(John Denver, 1943-1997)'와 함께 '아마도 사랑은(Perhaps Love)'을 불러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은 세계적인 테너 가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담이지만 같은 스페인 출신이며 세계적인 테너 가수인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1946-)'와는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였습니다. 플레시도 도밍고의 출생지는 스페인 마드리드이며 호세 카레라스의 출생지는 스페인 카탈로니아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카탈로니아 지역은 스페인을 다스렸던 마드리드 지역으로부터의 자치권을 쟁취하는 일로 두 지역 사람들 간 갈등의 골도 깊어져 갔고 상호 적대관계로 계승되어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드리드 지역의 플레시도 도밍고와 카탈로니아 지역의 호세 카레라스도 이 틀에 의해 서로 적대시하고 있었으며 이들 두 사람이 동시에 초청받는 자리에는 서로 참석하지 않는 의도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호세 카레라스는 1987년 미국의 병원으로부터 백혈병의 진단을 받았고 매월 골수이식과 수혈 등의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장기간의 치료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호세 카레라스는 마드리드의 에르모사(Hermasa) 재단이 운영하는 백혈병 전문병원의 후원에 힘입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후 호세 카레라스는 병이 완치되었으며 다시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에르모사 재단의 후원에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자신도 고마움의 보답으로 에르모사 재단에 가입하기 위해 재단의 정관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백혈병 전문 에르모사재단의 설립자이고 후원자의 리더가 되는 이사장이 바로 자신이 적대시하며 만나기를 꺼려했던 플레시도 도밍고임을 알고 놀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에르모사 재단이 자신의 백혈병 치료를 돕기 위해 특별히 설립되었고 플레시도 도밍고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게 되는 호세 카레라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익명으로 후원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큰 감동을 받았으며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플레시도 도밍고가 공연하고 있는 무대로 찾아가서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공개 석상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던 것입니다.

 

   이후 플레시도 도밍고는 에르모사 재단을 설립하게 된 동기를 묻는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난 다만 나의 경쟁자인 다른 예술가를 도우려고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해 더욱 유명해진 미담으로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1990년에는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가 지휘하는 빈 국립가극장 무대에서 '리하르트 바그너 (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에 출연하여 독일 오페라 무대에까지 활동의 폭을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이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가극장 무대에서는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에 출연하여 그의 명성을 크게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1990년 로마월드컵 전야제(FIFA World Cup Final In Rome)에서 그는 역시 세계적인 테너 가수인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와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1946-)'와 함께 '세 테너 콘서트(The Three Tenors Concert)'를 공연하는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을 순회하며 공연활동을 펼쳤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91년 내한을 필두로 1992년, 1995년, 2001년에 걸쳐 내한공연을 가졌습니다. 실로 그는 사르수엘라 극단을 비롯하여 미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의 오페라를 아우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는 물론 극적 표현력과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세계적인 성악가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의 출연으로 뉴욕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을 가진 바 있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개막공연을 17회에 걸처 출연하게 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플레시도 도밍고는 워싱턴 국립오페라(Washington National Opera)의 예술감독과 로스앤젤레스 오페라(Los Angeles Opera In California)의 창립자 겸 예술감독을 각각 맡고 있습니다.

 

   - 김기원의 음악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