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그대 없다면 / Sans Toi Ma Mie" - 살바토레 아다모 / Salvatore Adamo
"내 사랑 그대 없다면 / Sans Toi, Ma Mie"
- 살바토레 아다모 / Salvatore Adamo
Je sais tout est fini j'ai perdu ta confiance 그대의 사랑이 떠났으니 모든 게 끝이란 걸 난 알아요
Neanmoins je te prie de m'accorder ma chance 한 번만 더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는 없겠어요
Si devant mon remords tu restes indifferente 그대가 날 냉담하게 대해도 내 회한은
on n'peut te donner tort mais soit donc indulgente 그대를 비난할 수는 없어요 너그러운 마음을 바래요
Au nom des joies que nous avons vecues 우리 둘만이 함께 했던 줄거움으로
Au nom de l'amour que nous croyons perdu 끝났다고 생각하는 지난 사랑들을 떠올려 봐요
Sans toi, ma mie le temps est lourd 내 사랑 그대 없다면 하루하루가 괴로움뿐이에요
Les heures et les jours sombrent sans espoir 희망도 없는 어두운 나날들뿐이에요
Sans toi, ma mie 내 사랑 그대 없다면
Chorus 연주
Sans toi, ma mie le vogue sans but 내 사랑 그대 없다면 길을 잃고 헤맬 뿐이에요
Je vogue perdu sous un ciel tout noir 난 모든 걸 잃은 채 깜깜한 하늘 밑에서 떠돌 거예요
Comprends que dans les rues tentent 거리에서 우리 시선을 끌던 여자들의 순진한 모습이
Et leur air ingenu nous torture et nous hante 아직 뇌리에 남아 있던 지난 모습들이 떠오르네요
Aussi je viens vers toi pour te confier ma voile 그래요 난 그대에게 다가가 내 마음을 전할 거예요
Toi tu me guideras tu es ma bonne etoile 나의 돛을 맡길 거에요 그대는 날 이끌어 줄 거예요
Sans toi, ma mie le temps est lourd 내 사랑 그대 없다면 하루하루가 괴로움뿐이에요
Les heures et les jours sombrent sans espoir 희망도 없는 어두운 나날들뿐이에요
Sans toi, ma mie 내 사랑 그대 없다면
'살바토레 아다모(Salvatore Adamo, 1943-)'는 1943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Sicily) 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 4세 때인 1947년에 그의 가족과 함께 벨기에(Belgium)로 이주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12세 때인 1955년에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15세 때인 1958년부터는 작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20세 때인 1963년에 싱글 지금 흐르고 있는 '내 사랑 그대 없다면(Sans Toi, Ma Mie)'의 곡으로 데뷔하였으며 히트하였습니다. 이어서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 '신사 선생님(Vous Permettez Monsieur)' 등의 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음악으로 급기야 세계적인 가수의 반열에 서게 된 발돋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곡의 음반은 일시에 8백만장 이상의 판매고 기록을 세우는 등 그의 명성을 널리 떨쳤던 것입니다.
살바토레 아다모는 그의 나이 21세 때인 1964년에 '그날 밤 / 밤의 멜로디(La Nuit)'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고 이에 힘입어 벨기에(Belgium) 적십자사 창립 100주년 기념식 행사에 초대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살바토레 아다모는 벨기에 왕과 왕비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벨기에의 '파올라(Paola)' 공주를 위한 '다정하신 파올라(Dolce Paola)'를 작곡하여 공주에게 헌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살바토레 아다모는 이어서 '해변의 소녀들(Les Filles Du Bord Do Mer)'의 곡을 히트하였고 그의 나이 22세 때인 1965년에는 샹송 가수들의 선망의 무대인 파리의 올랭피아 극장무대에 당당하게 올라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올랭피아 극장 공연 실황을 담은 2집 앨범 'Adamo A L'Olympia'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후부터 올랭피아 극장의 고정 출연자로 자리매김하였으며 1973년까지 5회에 걸쳐 올랭피아 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매회 공연 때마다 공연 실황을 앨범으로 출시하였고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유럽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렁찬 찬사와 함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살바토레 아다모는 1965년에 앨범 'Adamo Volume 2'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장미꽃 필 때(Quand Les Roses)', '작은 동료(Petit Camarade)', '할아버지 할머니(Grand-Pere Grand-Mere)', '엘르(Elle)', '나쁜 소년(Mauvais Garcon)', 같은 해인 1965년에는 앨범 'Adamo La Nuit 2'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그대 허리에 나의 손을(Mes Mains Sur Tes Hanches)'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1967년에는 앨범 'Ton Nom'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그대의 이름(Ton Nom)', '인샬라(Inch'Allah)', 1967년에는 '한 방울의 눈물을 구름에(Une Larme Aux Nuages)', '사랑은 그대처럼(L'amour Te Ressemble)' 1968년에는 '에프 같은 여자(F, Comme Femme)' 등의 곡을 꾸준하게 발표하였고 히트하였습니다.
1969년에는 '작은 행복(Petit Bonheur)'의 곡을 발표하였고 천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으며 1970년에 골드 음반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1970년에는 '아름다운 여인(Les Belles Dames)'의 곡을 발표하였고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살바토레 아다모는 계속해서 '그리운 시냇가(Le Ruisseau De Mon Enfance)', '여름날의 왈츠(Valse D'ete)', '잃어버린 사랑(Perduto Amore)', '그대를 사랑해(J'aime / I Like)', '꽃(Fleur)', '블루 진과 가죽 잠바(En Blue Jeans Et Blouson D'cuir)', 등의 곡을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프랑크 푸르셀 오케스트라(Franck Pourcel Orchestra)'를 결성한 프랑스의 이지 리슨닝 뮤지션(French Easy Listening Musician)이자 영화음악을 편곡 연주한 '프랑크 푸르셀(Franck Pourcel, 1913-2000)'이 1968년에 발표한 연주곡에 가사를 붙여 '안녕 귀여운 내 사랑(Adieu, Jolie Candy)'의 곡을 리메이크하여 불렀으며 크게 히트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75년에는 '그것은 나의 인생(C'est Ma Vie)'의 곡을 발표하였고 다시 한번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앨범 'Reveur De Fond'를 발표하였고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네델란드, 독일, 스페인, 폴투갈, 터키, 일본 등지에 이어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와 특히 칠레 등지에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세계적인 싱어 송라이터이자 가수입니다.
- 김기원의 음악세상 -